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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생활사박물관, 노원 가볼만한곳 레트로 감성

by 세상 밖으로 2019.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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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개관 홍보물을 보고 찾아간 서울생활사박물관

    2019/07/26 - [공간] - 서울시청서소문별관 정동전망대 카페 다락 이용팁

     

    서울시청서소문별관 정동전망대 카페 다락 이용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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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청별관 정동전망대 다락 카페를 갔다가 나오는 길, 엘리베이터 옆에 붙어 있던 홍보물이 눈에 띄었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임시개관을 알리는 홍보물이었다. 요즘 레트로가 인기라던데 마침 비도 오고 서울 한복판에서 옛추억에 흠뻑 젖을 타이밍인가 싶어 홀린듯 발길을 옮겼다.

    7호선 태릉입구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서울생활사박물관.

    원래 이 곳은 법원(구, 노원구북부지방법원)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법원이 이전하면서 10년동안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도시재생 차원에서 리모델링하여 문화공간인 전시, 박물관으로 조성하여 개관하게 되었다.

    임시개관 기간 동안 이용객들의 만족도 조사를 통해 보완사항을 개선 후에 9월 정식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 임시개관이라 입장료는 무료.

     

    1층 전시실, 서울 풍경

    1950년대. 해방 후 한국전쟁으로 물자도 기반시설도 모두 파괴되어 폐허처럼 변해버린 한반도.
    전쟁 중 군인들이 통신선으로 사용하던 pp선을 꼬아 바구니를 만들어 쓰고, 포탄의 탄피를 재떨이로 사용하기도 했다. 구호물자로 받은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 포대도 전시되어 있었다.

    1903년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미국 포드A 자동차를 들여온 이후 1920년대부터 버스와 택시가 운행되고 남대문-명동 입구를 시작으로 종로 등 주요 간선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자동차도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도로를 포장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1970년대 부터는 이면도로나 주택가 골목길도 아스팔트나 시멘트 블록으로 포장되기 시작했는데 그 때 부터 교외나 공원에 나가지 않으면 흙을 밟을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지금은 공원에서도, 학교운동장에서도 흙과 모래가 사라지고 있다.

    제품 광고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그 아래에는 삼양라면과 미원이 있다. 삼양라면도 그렇지만 미원도 포장디자인이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결 같네.

    라디오와 삐삐, 휴대폰, PC 등 통신장비.

    오랜만에 보는 삐삐와 초창기 휴대폰.

    휴대폰이 처음 대중화 될 때 문자메시지도 없고 통화만 하던 시절, 디자인이 저랬었지.
    벽돌을 닮은 바형에 삐죽이 튀어나온 안테나. 전화번호나 겨우 보이던 자그마한 액정.

    게다가 저런걸 어떻게 들고 다녔을까 싶은 (요즘 세대들은 놀라 뒤로 자빠질) 노트북까지.

     

    2층 전시실, 서울살이

    지난 1백년 동안 서울은 엄청난, 아주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20만명 정도가 살았던 서울에는 지방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지금 현재 50배에 달하는 1천만명이 살고 있다.

    지금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조상 대대로 한양도성 4대문 안에서 살던 진짜 서울 토박이가 아니라 조부모나 부모나 아니면 본인이 지방에서 올라와 터전을 잡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정도 600주년을 맞아 서울토박이회가 만들어졌는데, 옛 한성부 행정구역은 4대문 안과 4대문 밖 10리 이내(신촌, 청량리, 정릉, 이태원 지역)에서 1910부터 3대 이상 거주해 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원수는 14,000여명에 이른다.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자녀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 서울로...
    1960년대 이후 서울은 공간적으로도 확장되었지만 인구도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레코드 가게 LP판들, 비디오 가게 테잎들...
    동네마다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만화 대여점, 비디오 대여점이 생각났다.

    딸이 결혼할 때 혼수로 해주던 아주 귀한 물건, 재봉틀(미싱이라 했었다).

    아이의 첫번째 생일인 돌잔치때 입혔던 한복.
    돌잔치에 초대된 이웃들은 아이의 건강과 성공을 바라며 답례를 했는데 1960년대 까지는 주로 쌀과 실타래를 선물했고 1980년대에 들어 반지, 팔찌, 현금, 옷 등의 선물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돌잔치의 유형은 많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실타래와 돌반지, 팔찌 등은 많이들 선물한다.

    배넷저고리와 공갈젖꼭지, 젖병, 걸음마 때 넘어져도 다치지 말라고 채워주는 무릎보호대.
    저런 것들은 누구네 집에 있다가 전시된 것인지.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게 놀랍다.

    분유통과 TV광고까지 하며 한때 어린이들에게 최고로 인기있었던 스카이콩콩.

     

    3층 전시실, 서울의 꿈

    대문옆에 붙였던 문패의 다양한 디자인.
    우편제도가 발달하면서 우편물의 양도 많아지고 편지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문패는 필수품이 되었다. 한 때 집집마다 문패를 달도록 법으로 정하기까지 했었다.
    나무나 대리석, 아크릴 등 다양한 소재에 이름을 새기거나 적어서 문패를 만들었다.

    집안 살림살이를 볼 수 있는 전시실.

    슬라이딩 도어처럼 옆으로 밀어서 열면 미닫이.
    당기세요/미세요 써 있는 출입문과 같이 경첩이 달려 손잡이를 잡고 앞뒤로 열면 여닫이.
    그리고 경상도에서 서랍을 말할 때 쓰던 빼닫이.

    라디오가 올려져 있는 농은 여닫이와 빼닫이로 되어 있다.

    옆으로 밀어서 열고 닫는 미닫이문이 달린 텔레비전과 선풍기,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기.
    19공탄 연탄틀과 화로.

    응답하라에서 많이 보았던 주택이나 아파트의 거실 풍경과 입식개수대 스타일의 부엌.

    시멘트 부뚜막 위쪽에 연탄 화구를 만들어 음식을 조리하고 아랫쪽에 공기구멍을 내었다. 한쪽에는 입식개수대를 두었는데 시멘트로 만들고 백색 타일을 붙여 위생적으로 보이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의 수도 보급률은 절반에 불과했다. 입식이라 불렀으나 지금의 싱크대처럼 수도를 틀면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물을 길어와서 써야 했다.

    석유풍로와 풍로에 불 붙일 때 필수품인 성냥개비.
    양은도시락과 찬합.

    교복과 교련복. 책가방.

    학당의 당복에서 시작된 교복은 해방 후에도 학교별로 차이가 없을 정도로 디자인이 획일화 되어 있었다.
    남학생은 삭발에 검은색 교복과 교모, 운동화 차림.
    여학생은 단발머리에 남색 스커트, 흰 칼라가 있는 정장 스타일의 교복에 구두 차림.

     

    서울생활사박물관 이용안내

    이용일시 : 매주 화요일 ~ 일요일 10:00 ~ 17:00 (정식개관 전까지)
    휴관 : 매주 월요일
    주차요금 : 최초 30분 1,000원이며 초과시 5분당 250원
    주차장이 있으나 협소하여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한다.

     

     

    어린이체험실 옴팡놀이터 이용방법,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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